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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이모저모

즉석식품도 화학적으로 외면할 이유가 없다

작성자  조회수52 등록일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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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스토리

 

즉석식품도 화학적으로

외면할 이유가 없다

 

 

 

1958년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어 우리나라에서 꽃을 피운

즉석(인스턴트) 라면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에서 소비한 라면은 무려 1212억 개나 된다.

중국이 무려 450억 개의 즉석 라면을 소비했고, 인도네시아(142억개)·베트남(85억개)·인도(76억개)·

일본(60억개)·미국(52억개)·필리핀(43억개)·한국(40억개)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1인당 즉석 라면 소비량은 베트남(85개)·한국(77개)·태국(55개)의 순이다.

 

이제 즉석 라면은 세계 시장에서 가장 저렴하고, 저장이 쉽고,

간편한 즉석(인스턴트)식품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더욱이 ‘기생충’과 같은 영화와 소셜 미디어의 먹방을 통해서

전 세계적인 유행을 선도하는 ‘문화상품’으로도 확실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K-라면의 수출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3년 라면 수출액이 9억 52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4.4% 증가했다.

라면 수출로 중형 휘발유 승용차 5만4000대 수출에 해당하는 엄청난 실적을 올린 것이다.

K-라면은 중국·미국·일본·네덜란드를 비롯해 전 세계 무려 132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올해는 역사상 처음으로 라면 수출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서고,

2015년 이후 10년 연속 수출 성장기록을 경신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hapter 01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즉석 라면을 개발한 '안도 모모후쿠'. (사진=나무위키)

 

즉석 라면은 1958년 일본의 식품기업가 안도 모모후쿠가 처음 개발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유입된 중국식 면요리인 ‘납면’(拉麵)을 일본식으로 변형한 ‘라멘’(ラ?メン)을 값싸고, 편리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가공한 것이다. 식용유에 튀겨서 건조한 ‘면’과 냉동건조(freeze dry) 기술을 이용해서 다양한 재료를 분말 형태로 가공한 ‘분말 스프’가 즉석 라면의 핵심이다. 수분을 제거한 즉석 라면은 굳이 보존재를 넣지 않아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1964년부터 일본식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1971년 컵라면이 개발되면서 즉석 라면은 더욱 편리한 간편 식품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2009년부터는 한국의 K-라면의 생산량이 원조인 일본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본이 처음 개발한 즉석 라면의 새로운 종주국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식품기업이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으로 이룩해낸 자랑스러운 성과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즉석 라면이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즉석 라면에 포함된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등의 영양 성분의 양과 포화지방·소듐(나트륨)·칼슘·캠사이신·MSG 등의 함량은 제품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특히 즉석 라면 한 개에 들어있는 포화지방의 양이 하루 권장 섭취량의 절반을 넘는 제품도 있고, 소듐이 하루 권량 섭취량의 90%나 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칼슘의 함량은 대체로 부족하다고 한다.

 

즉석 라면에 포화지방의 함량이 높은 것은 생산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값이 싼 식물성 유지인 팜유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1989년 공업용 쇠기름 파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팜유는 오일팜(기름야자)의 과육을 압착해서 얻은 식용유로 마가린이나 과자류의 생산에 많이 사용된다. 팜유에는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레산이 적어서 상온에서 고체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포화지방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지방간의 위험이 높아지고, 혈중 콜레스테롤과 충성지방이 늘어나서 심혈관게 질환과 비만의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석 라면에 소듐(나트륨) 함량이 높은 것은 일반적으로 짠맛을 좋아하는 즉석 라면 소비자들의 입맛을 반영한 결과다. 보통 소금(염화소듐)을 통해서 섭취하는 소듐은 우리 뭄의 생리작용에 꼭 필요한 전해질 성분이다. 체액에 포함된 소듐이 지나치게 부족해지면 전해질 쇼크가 일어나서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소듐이 우리 몸에서 아무리 좋은 역할을 하더라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소듐을 장기간에 걸쳐서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고혈압을 비롯한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우리 식약처는 2012년부터 ‘소듐 적게 먹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자료=식품안전의약처)

 

K-라면의 영양 성분이 제품에 따라 크게 다른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의약품이 아닌 즉석 라면이 모두 똑같은 영양 성분의 기준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즉석 라면을 생산하는 기업에게는 영양성분을 통일하는 노력보다 소비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석 라면의 맛과 영양학적 요구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즉석 라면은 영양학적 완전 식품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즉석 라면을 주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즉석 라면을 절대 먹으면 안 되는 불량식품으로 여길 이유도 없다. 라면을 하루 2봉지 이상 먹지 말아야 하고, 동물성 지방이 많은 식품과 함께 먹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소비자원의 권고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애써 만든 라면의 스프나 국물을 버려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의 주장은 섣부른 것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리도록 요구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는 넉넉한 식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하루 3끼의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이 8억 500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 UN의 분석이다. 우리 주위에서 현재의 즉석 라면의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매끼마다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영양 섭취기준에 따라 식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가 매끼 같은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활동량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영양 섭취기준은 우리의 건강한 식생활에 도움이 되는 ‘권장기준’일 뿐이다.

 


Chapter 02

잘못된 식생활을 피해야

 

 

 

가족이 정성껏 마련해 준 잘 차려진 식탁에서의 여유로운 식사는 누구나 좋아한다. 맛과 품질도 좋고, 영양소도 골고루 들어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누구나 그런 ‘슬로 푸드’를 즐기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인 가정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생활의 리듬이 지나칠 정도로 빨라진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마련해줄 가족이 없는 사람도 있고, 좋은 재료를 넉넉하게 구해서 여유를 가지고 요리를 할 만큼의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을 ‘정크’(쓰레기)라고 불러서는 절대 안 된다. 바쁘고 가난한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쓰레기’를 부르는 것인 인간적인 모욕이다. 값싼 즉석 식품이 생활습관병을 일으킨다는 주장도 근거를 찾기 어려운 억지다.

 

생활습관병은 한번의 식사에 의해서 발생하는 급성 질환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고집하는 사람에게 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만성 질환이다. 다시 말해서 생활습관병은 자신이 섭취할 음식을 선택하는 개인의 지속·반복적인 잘못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음식 자체의 문제 때문에 생활습관병이 발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신의 실수를 아무 잘못이 없는 음식에게 떠넘기는 태도는 매우 비겁하고 부끄러운 패배주의다. 간편한 즉석식품도 화학적으로는 외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